이것은 패러디가 아닙니다.
한 민족의 정체성을 호출하는 이름입니다.
"우리는 자원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길렀습니다."


6·25 전쟁이 한반도를 갈라놓던 그 해.
판자벽 하나, 칠판 하나, 그리고 태극기 — 그것이 교실의 전부였습니다.
교실이 없는 아이들은 길바닥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책상이 없어도 무릎을, 의자가 없어도 흙바닥을 받침 삼았습니다.
교과서는 누렇게 닳았고, 분필은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은 멈추지 않았고, 시험은 예정대로 치러졌습니다.
"전쟁 중에 시험을 보는 민족은 처음 본다."— 당시 한반도를 지원하던 UN 관계자들이 전한 말
포탄이 떨어지는 날에도, 부모는 끼니를 굶으며 자식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교실이 무너지면 천막을 세웠고, 천막이 없으면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 시절의 사진 한 장을 보고, 세계는 잠깐 멈췄습니다.
이 민족은 무엇으로 사는가 — 그 답을, 사진이 했습니다.
피난 중에도 학교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폭격이 멈춘 자리에 천막이 섰고, 그 천막 안에서 예정된 시험이 치러졌습니다.
부모는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냈습니다. 그렇게 자식이 졸업장 한 장을 받기까지, 한 집의 가축이 사라졌습니다. 그 졸업장이 다음 세대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시락 두 개를 쌌습니다. 한 개는 점심, 한 개는 야자(夜自) 도시락. 어머니의 노동이 곧 자식의 교과서였습니다.
가구당 사교육비 비중이 OECD 1위. 외신은 이를 비정상이라 진단했지만, 그 안에는 "내 자식만은 더 나아지길" 이라는 70년 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70년 동안 사람을 길러온 민족이 이제 AI가 사람을 가르치는 시대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습니다. 자식 교육 앞에서, 우리는 한 번도 주저한 적이 없습니다.
공부는 우리의 마지막 자원이자,
첫 번째 자존심이었습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AI가 인간을 대체할까 걱정할 때,
우리는 다르게 묻습니다.
"AI가 우리 아이의 학습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는가?"
자원이 없어 사람을 길러낸 민족에게,
AI는 또 하나의 기르는 손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 앞에서 망설인 적이 없습니다.
등잔불에서 형광등으로, 라디오에서 인터넷으로,
그리고 이제 — 사람 선생님에서 AI 선생님까지.
교육에 진심인 민족에게,
가장 좋은 도구를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AI는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의 다음 도시락입니다.
AI는 부모님의 진심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그 진심을 더 멀리, 더 평등하게 보내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선생님. 우리는 지름길을 팔지 않습니다. 70년의 민족이 그래왔듯이.
서울 강남이든, 시골 마을이든. 우리 아이가 같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게 — 그것이 AI 시대의 진짜 자유입니다.